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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의 필요성
문자를 만든 신과 영웅: 중국의 문자 창제 신화
<김은희>

중국의 민족이 크게 한족과 소수민족으로 구분되듯이, 중국의 문자는 한자와 소수민족의 문자로 대별된다. 2000년에 진행된 제5차 전국인구보편조사 통계에서 한족에 대한 소수민족의 비율이 8.41%인 것을 보면, 한족과 대비되는 소수민족이라는 표현에 붙은 ‘소수’가 전혀 물색없는 표현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 민족이 사용한 문자만은 ‘소수’가 아니다. 1950년대에 진행된 중국정부의 언어문자조사에 의하면, 두 가지 이상의 문자를 사용한 민족의 문자를 모두 통합하면 29개 민족이 50여종의 문자를 사용했었다고 한다. 중국대륙에서 공존하는 민족이 56개라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정책상의 편의를 위한 인위적인 구분이며, 광활한 대륙의 편벽된 땅에서 미지의 민족이 사라지고 있거나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자에 대한 통계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민족이 공존하는 중국대륙에서 생성되었다가 사라지고,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문자’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고대부터 사물의 발생의 근원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왔다. 인간의 근원에 대한 호기심 안에서 문자도 열외는 아니었다. 문자가 있는 민족이든, 없는 민족이든 자민족 문자의 발생에 관한 사색이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준 문자


다이족 장편서사시
“공작 왕국의 공주이야기” 책의 표지

 

고대 이집트의 토트(tot),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헤르메스(Hermes)는 모두 문자를 만든 신이다. 중국 소수민족의 문자 창제 신화에는 ‘천상의 신’이 인간을 하늘로 소집하여 문자를 나눠주거나, 직접 인간 세상에 내려와 문자를 전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천신께서 문자를 나눠주려 하니 정해진 날짜에 대표를 보내시오!”

이족은 총명한 청년을 뽑아서 천신에게 보냈다. 천신은 둥근 메밀떡에 문자를 새겨서 각 민족 대표에게 나눠주었다. 돌아오는 길이 배가 고픈 사람들은 문자기 기록된 메밀떡을 먹어버렸으나, 이족의 청년은 끝까지 참다가 송곳과 망치로 문자를 돌에 새긴 후에 떡으로 배를 채웠다. ─이족(彝族)의 신화

한족, 다이족, 하니족은 석가모니에게서 똑같은 문자를 얻었다. 돌아오는 길에 하니족은 문자를 먹어버렸으나, 한족과 다이족은 문자를 몸에 간직하였다. 강을 건널 때, 한족의 문자를 적은 종이가 물에 젖어서 글자 형태가 변했다. 이렇게 해서 한자와 다이 문자는 형체가 다르게 되었다. ─다이족(傣族)의 신화










“천신,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다”

먀오족 문자로 쓴 성경

 

천신이 하늘에서 인간세상으로 내려와 먹으로 둥글둥글하게 글자를 써서 먀오족에게 주었는데, 이것이 먀오족의 문자가 되었다. ─먀오족(苗族)의 신화


복희(伏羲)가 자녀를 셋 낳았는데, 먀오족과 한족, 이족의 선조가 되었다. 천상에서 선생님들 초청해서 아이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게 하였다. 먀오족 선조는 열심히 공부해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글자를 모두 외웠다. 한족의 선조는 총명했으나 놀기를 좋아해서 선생님께서 가르쳐준 글자를 적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책을 펼쳐보았다. 이족의 선조는 기억력이 좋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기억하고 외우도록 했다. ─먀오족(苗族)의 신화


천신은 전령을 보내 인간에게 문자를 전하기도 하였다.
천신이 오색찬란한 빛깔의 신조(神鳥)를 이쑤라지에게 보냈다. 새는 주둥이에서 실을 뽑아내며 모래사장에서 춤을 추듯 날아다니며 그에게 글자를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이쑤라지는 글자를 옷에 기록하여 이족에게 문자를 전했다. ─이족(彝族)의 신화



문자를 만들어낸 영웅


중국 고대에 최초의 자전인 《설문해자》에는 ‘문화 영웅’들이 소개되었다. “여와가 생황을 만들었다(女媧作簧)”, “백익이 우물을 만들었다(伯益作井)”, “두강이 기장술을 만들었다”, “황제가 처음에 면류관을 만들었다(黃帝初作冕)”. 이와 같이 “○作○”, 즉 “누가 무엇을 만들었다”라는 문장형식으로 소개된 전설속의 인물은 인간생활에 필요한 문화 요소를 최초로 발명해낸, 초인류적 능력을 지닌 ‘문화 영웅’이 되었다. 여기에는 문자 창제에 대한 기록도 빠지지 않는데, 한자비의 말의 인용하여 “창힐이 문자를 만들었다.(蒼頡作字)”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의하면 한자를 최초로 창제한 사람은 창힐이다. 《설문해자》 서문에 의하면, 창힐은 새와 짐승의 발자국의 무늬가 서로 다르게 구별되는 것에 착안하여 문자를 만들었다. 문자사용 이전, 수렵시대에 인류는 짐승이 남긴 발자국으로 그 대상을 분별할 수 있었다. 창힐은 짐승의 발자국에서 지시대상과 기호, 그리고 그 기호가 나타내는 의미의 관계를 인식한 것이다. 한 대 허신이라는 학자가 쓴 ‘창힐 문자 창제설’은 여러 한자 기원설 중에서도 언어학적 지식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창힐조적서비

 

창힐의 문자 창제에 관한 전설에는 흥미로운 내용이 나온다.

창힐이 문자를 만들자 하늘은 곡식비를 내리고, 귀신은 밤새 울었다.(天雨粟, 鬼夜哭) ─ 《회남자(淮南子)・본경훈(本經訓)》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하늘은 왜 곡식비를 내리고, 귀신은 왜 밤새 울었을까? 문자의 사용과 함께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게 된 인류를 축하하기 위해 곡식을 넉넉하게 내려서 페스티벌이라도 준비하게 한 것일까? 귀신은 기쁨의 눈물이라도 흘린 것일까? 한 대의 고유(高誘)라는 학자는 이렇게 해석하였다. “문자의 창제로 ‘속임수와 거짓’이 싹텄다.” 문자의 습득으로 인간은 농사를 등한시하고 도구(기술)를 연마하는 데에만 몰두할 것이기 때문에, 이들이 굶주리게 될 것을 걱정해서 ‘하늘에서 곡식비가 내렸고’, 인간이 이제 귀신을 섬기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귀신은 밤새 눈물을 흘렸다’. 문명의 발달과 사회문화의 발전을 가져온 문자가, 사기가 난무하는 사회의 온상이라는 이러한 부정적인 문자관은 농업을 나라를 세우는 데 근본으로 여기는 농본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토트와 헤르메스가 내적인 지혜와 통찰력의 상징으로 추앙받았듯이 인간으로 그려진 전설속의 인물 ‘창힐’도 후대에 신처럼 추앙을 받았다. 그의 통찰력은 ‘네 개의 눈’으로 형상화되었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보편 인류와 다른 뛰어난 관찰력을 지닌 인간의 모습을 감각 기능의 차이로 과장되게 표현되었다.



중국의 여러 민족 신화에도 창힐과 같이 문자를 창제한 지혜로운 영웅이 등장한다.

예나이추(野乃出)이라는 마을에 성(姓)이 비(畢)인 목동이 살았는데, 그 지역 사람들이 문자가 없이 불편하게 사는 것을 안타까워서 양의 간으로 도자기 조각에 문자를 새겨서 마을로 돌아와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이족(彝族)의 신화


한족과 장족, 나시족의 지혜로운 사람이 한 날 함께 천상으로 가서 천신에게서 경전을 받아오기로 약속한다. 한족과 장족 사람은 경전을 받아오지만, 나시족 사람은 뒤쳐져서 경전을 받아오지 못한다. 그는 비록 경전을 받아오지도 못하고, 문자를 쓸 수 있는 능력도 없었지만, 산을 보고 산을 그리고, 소를 보고 소를 그리면서 보이는 대로 그리는 문자를 만들어낸다. 나시족은 이렇게 해서 상형문자인 동파문 경전을 갖게 되었다. ─나시족(納西族)의 신화



《이문 문헌학 개론》 표지 고대 이족의 문자 나시문자 둥바경


잃어버린 문자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는 자민족의 문자를 갖게 되지 않은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 천상의 신은 대나무조각, 대나무잎, 소가죽, 빵 등 문자를 기록할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매체에 기록하여 여러 민족에게 나누어준다. 문자를 받아온 사람들은 오랜 여정으로 배가 고팠고, 돌아오는 길에 양식이 떨어지자 배를 채울 수 있는 ‘가죽’, ‘빵’을 먹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들의 문자는 사라졌다.

천상의 신이 인류에게 문자를 나눠줄 때, 징포족에게는 문자를 소가죽에 써서 주었다. 천상에서 돌아오는 길에 몸에 지닌 음식이 다 떨어지자 문자가 적힌 소가죽을 구워 먹었다. ─징포족(景頗族)의 신화

천신이 인간에게 문자를 나눠줄 때, 지눠족에게는 소가죽에 문자를 써서 주었고, 다이족에게는 바나나잎에, 부랑족에게는 보리빵에 써서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부랑족 보리빵을 먹었고, 지눠족은 소가죽을 구워먹었다. 부랑족과 지눠족은 문자가 없게 되었다. ─지눠족(基諾族)의 신화

천상의 신이 문자를 나눠준다고 각 민족의 대표를 소집한다고 사람을 보내 각 민족에게 통지를 하던 날, 와족만 그 통지를 받지 못했다. 문자신은 두견새에게 편벽한 산에 거주하는 와족 사람들에게 문자를 찾아갈 것을 알리도록 했다. 아와산(阿佤山)에 도착한 두견새는 부지런한 와족 사람이 술을 담그는 것을 보았다. 가느다란 대나무관을 타고 내려오는 술을 보고는 와족 사람들이 매우 총명하여 이들에게 문자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하고는 그대로 돌아갔다. 와족은 천상에서 문자를 받는 날을 놓쳐서 문자가 없게 되었다. ─와족(佤族)의 신화

여러 신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것은 ‘곡식’, ‘식량’이다. 고대 중국인은 농경생활로 곡물의 생산과 저장이 보편화되면서 문자가 발생되었다고 인식하였다. 문자의 발명과 함께 “어리석은 자는 잊어버리는 것에 대비하고, 현명한 자는 원대한 생각을 기록할 수 있게 되었다.(《회남자(淮南子)・태족훈(泰族訓)》)” 이러한 문자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 달리, 여러 문자 창제 신화에서는 문자의 발명에 따른 문명의 발전과, 배고픔이라는 본능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농업생산과의 갈등이 드러난다. 문자가 없는 민족들은 문자가 기록된 소가죽과 빵을 먹어버리면서 문명인이 될 기회를 잃어버린 대신에, “民以食爲天(백성은 식량을 하늘로 여긴다)”의 근간인 농업생산을 선택한 것이다. ‘문자를 삼켰다’는 것은 ‘지혜를 삼켰다’는 말로 해석이 가능하다. 물질적인 문자가 존재하지 않지만, 그들 안에 내재하는 지혜로 부지런히 농업생산에 몰두하며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자족감의 표현일지도 모른다.